2007년 03월 13일
훌라걸즈 아직보지 않았지만... 기대됨
지난 2월 16일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제 30회 일본 아카데미상은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연출한 [훌라 걸스_ Hula Girls]을 위한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이 영화가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과 여우조연상등 주요 5개 부문을 휩쓸면서 2006년 최고의 일본영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거듭된 구조조정으로 인해 평생을 석탄가루와 함께 살아온 이들이 순식간에 해고될 운명에 처한 1965년 일본 북부 후쿠시마의 탄광촌이다. 여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할 운명을 지닌 두 소녀가 있다.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손톱 밑에 낀 검은 때”에서 벗어나기 위해 훌라 댄스를 배우려는 사나에와 친구의 간청에 못 이겨 한 배를 타게 된 기미코가 그녀들인데, [훌라 걸스]는 이 두 소녀와 더불어 한물간 훌라 댄서 마도카 선생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가운데, 춤을 배우는 소녀들에겐 꿈과 희망을, 우울한 일상의 탄광마을 에는 새로운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전형적인 장르공식을 따르는 영화이다. 이 작품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은, 유사 소재를 가진 영화들과는 달리 인물 간 갈등을 절제한 대신 조력자를 활용하는 연출방식이다. 이를테면, 갈등기제의 최소화를 통해 클라이맥스의 극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라고 할 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비루한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인생의 한 순간 찾아온 희망을 붙잡고자 훌라댄스를 추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극적인 감동으로 견인하는데 필요한 메커니즘은 무엇 일까? 영화 마니아를 자처하는 세심한 관객이라면 그것이 갈등기제의 증폭임 을 쉽사리 알아차릴 것이다. 쉽게 말하면, 댄스를 배우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을 어른들의 공작들이나, 교묘하게 제도적으로 옭아매려는 사회 환경의 변화,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의 흔들림, 또는 내부갈등과 분열로 맞는 위기상황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와 경험을 인정해주는 가운데 조용하고 부드럽게 꿈의 실현을 끌어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설사 영화 속 상황일지언정 (어쩌면 영화적 상황이기에 더욱)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장르영화가 가진 한계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사람들의 춤 연습 방해나 인물들의 결함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여타 영화와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바로! 그 지점에 [훌라 걸스]가 위치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라고 갈등상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미코가 엄마와 다투고 집을 나오는 장면이나 사유리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까닭에 마도카 선생이 떠나게 되는 장면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마저 정말로 영리하게도) 아이들의 춤 연습과 순회공연을 방해하는 대신, 개장 예정인 하와이언 센터의 야자수를 동사위기에 빠뜨림으로써 위기감을 대치시키는 것은 이상일의 능력을 단박에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또한 전체적으로 큰 갈등 없이 소녀의 꿈과 퇴물댄서의 결합이라는 통속성 사이로 투명한 관을 꽂아 휴머니즘을 주입하는데 성공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이는 필요이상으로 기성세대와 반목하는 가운데 억지스레 갈등을 만들어내고 반전을 통해 감동을 끌어내려는 영화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하고 단아한 설정이다. 오래전, 초밥의 명인 남춘화 씨의 南壽司를 자주 찾은 적이 있는데, 이분에 따르면 “초밥의 맛을 좌우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간장”이라고 한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을 적당히 식힌 후 신선한 회와 함께 빚어낸 좋은 초밥만큼이나 간장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말인데, [훌라 걸스]를 보고 나오면서 이 얘기가 생각났던 것은 치밀하게 짜여 진 담백한 스토리텔링에 맛깔스러움을 더해주는 스시 집 간장의 존재감, 즉 이상일의 영리한 연출력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평자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기획되고 재단된 영리함이라 폄하할 수 도 있을지 모르나, 모름지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깔끔하되 뒷맛마저 개운한 일본음식과도 같은 웰-메이드영화가 재일교포 3세 감독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런들 또 어떠랴. ![]() 한동안 우리사회를 뒤덮었던 현상중 하나는, 부패한 기성세대라 명명된 나이 먹고 고루한 가치관을 지닌 보수적 인물들에 대한 맹목적 불신과 그들과의 차별화를 통한 자기위상 재정립 바람이었다. ‘어떻게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절멸의 순간을 볼 때까지 집요하게 공격해댈까?’라는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세대 간 반목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한국영화에서도 쉽사리 발견되었으며 장르를 막론하고 대다수 영화의 플롯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성세대를 비난하지 않고 서로가 반목하지 않고도, 앞선 세대의 입장에서 젊은 세대의 철없고 치기어린 행동일지언정 암묵적으로 지켜봐주는 것만 으로도, “어두운 곳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이 일인 줄 알았는데, 웃으며 춤추는 것도 일이였어. 저 애들이라면 웃으면서 일하는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는 기미코 엄마의 한 마디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을 끌어내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영화 [훌라 걸스]가 가진 미덕이자 소녀들의 꿈과 신명난 춤사위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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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3/13 21:1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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